Friday, 10 February 2012

새 `슈퍼지구', 생명체 서식 가능성 최고




(서울=연합뉴스) 지구에서 불과 22광년 거리에 있는 저온의 별 주변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생명체 서식 가능성이 가장 높은 행성이 발견됐다고 스페이스 닷컴과 사이언스 데일리가 2일 보도했다.
미국 카네기 과학연구소 등 국제 연구진은 이 외부행성이 우리 태양과는 성분이 다른 세 개의 별로 이루어진 항성계에서 발견돼 생명체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천체물리학 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유럽남부천문대(ESO)가 이미 발표한 자료를 새로운 기법으로 분석하고 하와이 케크 천문대의 에셸분광기와 칠레에 있는 카네기 행성추적 분광기 자료를 종합해 이런 성과를 얻었다.
3중성계에 속하는 별 `GJ 667C' 주위를 28.15일 주기로 도는 행성 `GJ 667Cc'는 질량이 지구의 4.5배이며 지구가 받는 광선량의 90%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행성이 받는 광선의 대부분은 적외선이어서 행성에 흡수되는 에너지의 비율이 지구보다 높지만 이런 점을 계산에 넣더라도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것과 비슷한 양의 에너지를 중심별로부터 받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행성의 표면 온도는 지구와 비슷해 "지금까지 발견된 행성 중 물, 더 나아가 어쩌면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슈퍼지구 후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중심별 GJ 667C 주위를 7.2일 주기로 도는 행성 `GJ 667Cb'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중심별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액체 상태의 물이 있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했었다.
학자들은 이 항성계에 공전주기 75일의 또 다른 슈퍼지구와 거대 가스행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 관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 항성계는 우리 이웃이다. 이보다 가까운 별은 100개 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한가지 흥미있는 사실은 GJ 667C가 우리 태양 질량의 3분의1 밖에 안되는 M급 왜성으로 그리 밝지는 않지만 지상 망원경으로도 볼 수 있으며 다른 두 별 GJ 667A와 B도 훨씬 멀긴 해도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3중성계는 철이나 탄소, 규소 같은 중원소 성분이 매우 적어 처음엔 행성을 거느릴 것으로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새 행성의 발견은 생명체 서식가능 영역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할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처럼 가까운 곳에서 슈퍼지구가 새로 발견됐다는 것은 미항공우주국(NASA)의 케플러 망원경이 놓치기 쉬운 영역의 탐사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케플러 망원경의 추적 대상은 수천 광년 거리에 있는 천체들로 탐사선을 보낼 가능성이 없지만 "가까운 천체라면 언젠가는 로봇 탐사선을 보낼 수도 있고 몇백년 안에 엽서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달 뒷면 공개… 운석구덩이로 울퉁불퉁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달의 뒷면을 공개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나사는 지난 해 9월 발사된 달 탐사선 그레일 1, 2호가 찍어 보낸 달 뒷면 영상을 공개했다.
쌍둥이 탐사선인 그레일 1, 2호에는 각각 4대씩 문캠(MoonKam)이 장착돼 있어 달의 뒷면 촬영이 가능했다.
영상으로 공개된 달의 뒷면은 크고 작은 크레이터(운석구덩이)들로 가득하다. 지구로 날아드는 운석이나 혜성 유성 등이 달 뒷면에 충돌하면서 남겨진 흔적으로 추측된다.
달의 뒷면을 본 누리꾼들은 "달의 뒷면이 저렇게 생겼을 줄이야" "우주는 역시 신비롭다" "토끼는 어디갔죠?"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얼어붙은 지구…우주에서 바라보니 “덜덜”




[서울신문 나우뉴스]북극을 연상케 하는 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강추위로 인해 꽁꽁 얼어붙은 유럽의 모습을 담은 위성사진이 공개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동유럽 등지에서는 기온이 영하 40도 가까이로 떨어지면서 한파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한파로 인해 단단하게 얼었던 눈이 녹으면서 댐의 벽을 부수는 등의 피해를 입었으며, 루마니아는 146곳이 눈보라로 도로가 막혀 수 백 명의 시민이 고립되는 사태를 겪었다.
루마니아 기상청의 한 관계자는 “한파로 인해 전기공급이 중단된 가구도 수 백 채에 이른다.”고 말해 사태의 심각성은 연상케 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무려 8일간 계속된 한파로 135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최근 공개된 위성사진은 유럽에 닥친 한파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 사진 속 유럽대륙의 상당수가 흰 눈으로 덮여 있는 것.
하지만 위기극복을 위해 만든 유럽위원회 측은 “진짜 ‘최악의 날씨’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해 우려를 더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다가오는 2주가 정말 힘든 시간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파로 인해 꽁꽁 얼어붙었던 눈 등이 녹기 시작하면서 한파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여기에 유럽 각국이 한파로 인해 가스 등 생활에너지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불편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동부 유럽으로 공급되는 러시아산 가스가 최근 10% 가량 줄었고 폴란드와 슬로바키아도 공급량이 각각 7%, 30% 감소함에 따라 가스부족 사태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난폭한 로맨스' 이동욱 테마곡 '아플까', 온라인에서 인기몰이중


엑스포츠뉴스=방송연예팀 안혜민 기자] '난폭한 로맨스' 남자주인공 이동욱의 테마곡 '아플까'가 인기 몰이 중이다.
KBS2 수목드라마 '난폭한 로맨스' 는 야구선수 무열(이동욱 분)과 그를 경호하게 된 안티팬 은재(이시영 분)의 사랑이 무르익으며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여기에는 주인공들의 사랑의 아픔을 더욱 애절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OST 역시 큰 몫을 하고 있다.
9일, 무열의 테마곡으로 공개된 '난폭한 로맨스 OST PART. 5-아플까' 는 신인가수 동우의 호소력 짙은 매력 보이스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조화된 곡으로, 사랑에 눈뜬 무열의 감정을 절절하게 드러내 주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곡은 '난폭한 로맨스' 음악감독이자 '다모', '공주의 남자' 등을 히트시킨 김선민의 작품으로, 작곡가 김경범의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와 편곡으로 완성되었다.
이번 '난폭한 로맨스' 무열의 테마곡 '아플까' 는 9일 공개되자마자 다음 사이트는 물론 벅스차트 3위에 랭크되는 등 게시판과 온라인에서 많은 관심 속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편, '난폭한 로맨스' 는 시청률(AGB닐슨 수도권 기준) 6.3%를 기록, '부탁해요 캡틴' 을 따라잡는 등 뒷심 발휘중이다.

대학 점퍼, 너는 왜 입니?




교복의 진화다. 야구 점퍼 모양의 '대학 점퍼'. 왼쪽 가슴에는 학교 이니셜이, 오른팔에는 대학 로고가, 왼팔에는 학번이 붙어 있다. 큼직한 학번 패치만 보고도 선후배를 금세 짐작할 수 있다. '뒤태'가 하이라이트다. 등에는 대학 이름과 학과를, 왼소매 끝에는 본인 이름을 새길 수 있다. '대학 점퍼'(일명 '과잠')는 걸어다니는 학생증이다. 사진만 실물로 대체됐다. 교복을 벗고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또 다른 교복을 입는 셈이다.
'과잠을 입고 클럽 가면 안 되니?' 얼마 전 서울대 학내 커뮤니티 'SNULife'에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대학 점퍼를 입고 홍대 앞 클럽에 출현한 본교 학생을 비판한 글에 대한 반박이었다. 뭘 입고 어딜 가건 무슨 상관이냐는 게 글의 요지. 댓글이 이어졌다. '놀러 가서까지 학교를 드러내는 옹졸한 엘리트주의'라는 비판, '옷이 몇 벌 없는 학생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옹호 의견 등 반응이 다양했다.
서울대 게시판에서 '과잠'은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클럽에서는 자제하자'는 정도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과잠'을 입는 행위 자체에 대한 찬반이 팽팽했다. '자기 학벌을 내세워야 할 땐 이용할 거면서 고작 과 점퍼를 맞춘 거에 뭐라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서울대 나온 걸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면 좀 어떤가. 과잠 입고 자랑하는 것도 기분 나쁘지 않다'는 솔직한 의견도 눈에 띄었다.
옷으로 명문대생임을 알게 하다니
반면 2007년 서울대를 졸업한 김도민씨는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런 캠퍼스 풍경이 충격이었음을 고백했다. 2010년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기업 브랜드가 박힌 건물 사이사이, 대학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다니는 후배들이 생경했다. 김씨가 학부생일 땐 '쓰는 물건으로 서울대생임을 알게 하는 걸 천박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3년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학 내 혹은 대학 근처에서 종종 보였던 대학 점퍼가 요즘은 버스 정류장, 동네에서도 쉽게 보인다. 명지대에서 강의를 하는 김지은씨(40)는 "2~3년 전부터 학생들이 많이 입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은 유행처럼 번져 학교 밖에서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한 정일희씨(28)의 네 살 아래 동생도 대학 점퍼를 즐겨 입는다. 정씨는 "내가 다닐 땐 체대 학생 정도가 맞춰 입고 다녔는데 동네에서까지 학교 이름이 새겨진 옷을 입고 민망한 기색 없이 다니는 동생을 보면 벌써 세대차가 나나 싶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요즘 대학생들은 왜 대학 점퍼를 즐겨 입을까. 학생들은 편리함ㆍ소속감ㆍ유행ㆍ애교심 등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김민수씨(20ㆍ연세대)는 "안에 무엇이든 받쳐 입기 편해서, 특히 도서관 같은 데서 즐겨 입는다"라고 말했다. 시험 기간에는 실내에서 이른바 '삼선 슬리퍼'를 신고 대학 점퍼를 입은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조아라씨(중앙대ㆍ23)도 마찬가지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조씨는 학내에서 편히 입기 위해 올해 초 학교 점퍼를 구입했다. 주로 과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1~2학년이 사 입지만 최근엔 3~4학년이 뒤늦게 구입해 입기도 한다.
얼마 전 학과 학회용 점퍼 10개를 주문한 최송화씨(20ㆍ대전침례신학대)는 단체복이 주는 결속력을 이유로 꼽았다. 학회 구성원끼리 소속감을 가지기 위해 주문한다는 것이다. 주문한 옷을 입어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학회 차원이 아니라 과 전체에 구매를 제안할 참이다. 최씨에게는 대학 점퍼와 티셔츠가 대학 시절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같은 옷을 입은 동기, 선후배들과 캠퍼스를 누비는 상상을 하곤 했다. 단, 학교 밖에서도 입기 위해 대학 로고는 빼달라고 제작 업체에 주문했다.



앞서의 서울대 논쟁에서 드러나듯 대학 점퍼 착용을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스무살 정의를 말하다>의 저자 고재석씨는 "대학 점퍼는 총장의 결단이 아니라, 학생들에 의해 자치적으로 선출된 학생회에서 결단을 내려 단체 제작까지 한다"라며 "내가 이 학교에 속한 적이 있다는 것으로 내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심리"에서 이 옷을 입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많은 대학에서 즐겨 입는다고는 하지만, 명문대 학생들이 더 애용한다는 전제에서다.
고려대에 다니는 장희영씨(20)는 학교(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집(서울 서대문구)까지 점퍼를 입고 다닌다. 후드 티셔츠에 점퍼 하나면 겨울에도 따뜻하다. 이런 실용적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애교심이 크다고 장씨는 말했다. "구입할 사람은 학기 초반에 신청을 받는데 전부 다 산다. 솔직히 고려대 왔으니까 뭐,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연대감도 생긴다."
이복정씨(20ㆍ연세대)는 간혹 학교 점퍼를 밖에서도 입고 다닌다며 "자랑스럽지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만 남들 눈에 학교를 과시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또 "대학 점퍼를 입고 어딜 가면 좀 착하게 행동해야 할 것 같다. 어디 학생인지 아니까"라고 말했다.
과거 대학 점퍼는 일종의 상징 자본이었다. 대표적으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점퍼는 각각 '설잠, 연잠, 고잠'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며 트렌드와 상관없이 꾸준히 소비되었다. 지금도 연고전 같은 때는 학교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나눠서 응원하는 양 대학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수능 관련 10대들의 카페에는 '고려대 다니는 사촌형 점퍼를 입었더니 사람들 대접이 달라지더라' 식으로 명문대 점퍼의 위력을 과시하는 사례 글이 적지 않다.
"하나의 트렌드일 뿐"
그러나 예전에는 이를 드러내놓고 과시하는 것이 금기시되기도 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대학생들은 의식적으로라도 대학이라는 상징 자본을 내세우지 않으려 했다"라고 말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씨는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 점퍼 같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듯하다. 돈이 없거나 막 입기 편해서라는 이유를 드는데 그게 왜 하필 학교 이름이 박힌 옷이어야 하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반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씨는 이를 "애교심이나 학벌 과시 문제로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지방대 학생들도 (대학 점퍼를) 입는다. 유행이고 그냥 편해서 입는다고 한다. 연고대에서 시작된 문화지만 지금은 하나의 트렌드일 뿐이다"라는 해석이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는 2월은 학과 혹은 단과대별 대학 점퍼 주문이 몰리는 시기다. 일부 대학은 신입생의 학생회비 목록에 단체옷 항목을 넣기도 한다. 이제 막 교복을 벗은 학생들이 또 다른 교복을 입게 되는 셈이다.

[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3.칼을 베어버린 꽃잎 (11)



연꽃들은 이글거리는 불꽃을 닮았다
극도의 쾌락과 절정의 아름다움을 만났다면 그 순간 삶을 정지시키고 싶지 않을까
열락에 빠진 절정의 순간, 문득 고통 없이 숨을 멈춘다면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홍련과 백련이 흐드러진 이 연꽃 밭이야말로 다비장이다
“눈멀었던 내 앞에 다시 열린 세상이 예전의 그 세상 맞소?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별자리가 틀어지는 것 같은 충격이오.”
 의자에 앉아 있는 김승과 그의 혁명 동지들이 저승 세계 사람들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흉측한 김승의 몸이 그걸 증명했다. 심한 화상으로 온몸이 문드러지다시피 한 김승은 분명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닌 지상의 인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은 열 몇 해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참사에 관한 거였다. 그것이 사실인지, 날조인지를 분별해내는 일은 감찰인 내 몫이었다.
 “진실을 알지 못하던 때와 알게 된 이후의 세상은 다른 것이오.”
 김승은 옷매무새를 고쳐서 흉터를 덮었다. 용케 화상을 비켜간 준수한 얼굴은 사람을 사로잡고 조복시키는 기운으로 넘쳐났다. 큰 인물들이 갖추고 있는 압인지기(壓人之氣)였다. 삭발한 머리의 이마는 높았고 눈빛은 강렬했다. 경교승들이 입는 흰 가사장삼이 썩 잘 어울리는 풍모였다.
[일러스트=이용규]
 “무엇이 진실인지는 더 따져봐야 하오.”
 “나도 그걸 원하오. 그래야 나를 진심으로 이해할 테니까 말이오.”
 “확인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은 내가 데려왔던 인보 스님의 주검부터 봐야겠소.”
 최이 집정의 간자 노릇을 해 왔다는 말이 사실일지라도 그는 수기 스승의 시자였고 나의 길동무였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죽었다. 내가 눈먼 동안에. 보존 처리한 주검일망정 마땅히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당연히 그게 우선이지. 아침 먹고서 안내하리다.”
 곧 전 장군의 기별이 왔고 부엌 식탁에 모였다. 탁연, 쌍둥이 형제, 거지 왕초는 물론 가온과 전 장군 내외까지 한 식구처럼 기다란 식탁에 둘러앉았다.
“한 방울의 물에도 세존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 이 밥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듯 우리도 세상의 밥이 되어 세상을 살리게 하소서.”
 두 손을 모은 좌중 앞에서 가온이 그렇게 기도했다. 언제 들어도 심령을 울리는 오묘한 음성이었다. 불가에서도 이와 흡사한 식사 기도가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세존이 누구냐에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는 석가모니 부처가 아니라 예수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좋다. 유가는 공자라고 할 것이고 도가는 노자나 장자라고 할 테니까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다만 동굴 예배소에서 들었던 찬송가 가사에서처럼 왕 중의 왕이며 여러 세존 가운데서도 진리의 황제인지는 검증해봐야 할 일이다.
인보의 주검이 있다는 의원의 집은 바로 윗집이었다. 바위벼랑 아래 초가집으로 우리가 찾아갔을 때 의원은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회진하고 있었다. 팔다리가 잘리거나 화살에 맞아 곪아터진 환자들이었다. 전쟁과 노역에 동원됐다 입은 상처였다.
 “소군마마, 아침 자셨습니까?”
 김승이 의원 영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그럼요. 깐깐한 승정께서도 오셨구려. 어젯밤에 그 짜증을 내고 생난리를 치더니 어느새 눈까지 떠서.”
 그가 이쪽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눈이 안 보일 때는 잘 몰랐는데 마주 대하고 보니 기품이 넘쳐났다. 백발과 수염이 학처럼 날리는 의원 영감은 도골 선풍이었다. 나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얼굴이었지만 팔십은 넘어 보인다.
 “지밀 승정, 소군께 정식으로 인사 올리시오. 내 일을 발 벗고 나서서 돕고 계신 선사(善思) 소군 어른이시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소군(小君)은 대군과 배가 다른 황족으로 승려가 된 왕자를 가리켰다. 이 의원 영감이 선사 소군이라면 명종 황제의 서자로 금상(今上·지금의 임금)인 고종의 작은아버지뻘이다. 고종의 아버지이자 선대왕이었던 강종은 선사 소군의 배다른 형이었다. 황족인 소군들은 승려가 돼서도 머리를 기르고 황궁을 출입하며 온갖 권력과 호사를 다 누렸다. 최이 집정의 아버지 최충헌은 소군 10여 명을 모조리 절집으로 내쫓았다. 명종을 폐위한 뒤에는 소군들을 모조리 섬에 유배 보내버렸다. 선사 소군의 유배지가 이곳 변산이었을 리는 없다.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 들어와 의원 노릇을 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최씨 무인정권 세력들과는 원수지간이었다. 김승과 자연스럽게 동지가 된 이유일 거였다.
 “소승이 몰라 뵈었습니다.”
 나는 저간의 무례를 용서해달라는 뜻으로 합장했다.
 “허허허. 눈이 안 보였으니 몰라 뵐밖에요.”
 그는 당혹스러워하는 나를 그렇게 눙쳤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시골 늙다리 의원이라는 선입감 때문에 그만 진면목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뭇 생명을 언제나 부처로 대해야 진짜 중이지요. 우리 마을은 신분을 따지지 않는 한 형제자매들이니 괘념치 마오.”
 그의 하심(下心)은 가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며칠 동안 겪었던 그는 영락없는 시골 의원 영감이었다. 절집과 황궁을 넘나들며 호사를 누렸던 지난날의 습이 남아 있다면 이런 마을에서 인술(仁術)을 펼칠 수 없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알량한 승정 벼슬을 으스대고 까칠하게 굴었던가. 참 가소로웠을 게다. 하지만 그는 나를 한결같이 지극정성으로 병구완했다. 폭포에 갔다 쓰러지고 깨어나서는 그를 업신여기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는 지혜롭게 늙어가는 노장답게 담담히 받아냈다. 당장 호통 칠 수 있는 신분이었음에도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어떤 힘일까.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화시킨 걸까.
 그가 내게 바투 다가와 내 눈꺼풀을 손으로 벌려보았다.
 “씻은 듯이 나았구려. 어쩐다? 그 스님 주검은 아직 염장하지 못했는걸.”
 다시 한 번 웃어 보인 그가 산 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과 합류하는 내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엊저녁만 해도 나는 날이 밝는 대로 인보의 관을 수레에 싣고 이 지옥을 벗어날 참이었다. 그래서 인보의 주검을 소금에 절여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지옥의 순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뒤란으로 돌아가자 석굴이 나타났다. 관솔불을 밝힌 석굴 안은 냉기가 돌았다. 자연 석굴 안에 여러 갈래의 인공 석굴이 뚫려 있었고 진한 당귀 냄새가 풍겼다. 석굴 안에 약재들을 쟁여놓았던 것이다. 그중 제일 깊숙한 동굴 속에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관 뚜껑을 열고 관솔불을 가까이 비췄다. 인보가 웃고 있었다. 핏기 가신 알몸뚱이로 편안히 누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연근 우려낸 소주로 적셔두었기 때문인지 부패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사반(死斑) 얼룩이 더러 보일 뿐 중독된 입술까지도 멀쩡했다. 소주로 닦아낸 모양이었다.
 “강도로 실어갈 테요? 그럼 염장을 합시다.”
 선사 소군은 곧 염장할 기세였다. 왕자의 신분으로 이 궁벽한 산골에서 의원 노릇 하는 것도 심한데 주검까지 만지는 일을 하다니 민망했다.
 “아닙니다. 사인만 확실하다면 다비해서 분골함에 담아 가겠습니다.”
 나는 인보의 주검에 다가가 입을 열어본다. 입술 안이 검다. 잘 모르지만 중독이 확실해 보인다.
 “우리 마을에 이 스님을 독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지밀 승정, 이제 짐작할 테지만 내가 마리아와 예수 판화를 대장도감 수기 도승통 앞으로 보낸 건 처음부터 지밀 승정을 불러 내릴 생각에서였소. 수기 도승통이 몸소 여기까지 올 리는 만무하고 당연히 승정과 인보 스님이 올 거라고 예상했소. 내가 아쉬워서 불러들여놓고 왜 해코지를 하겠소. 더구나 아무 죄 없는 철부지 승려를 말이오.”
 김승이 소군의 말을 받아 일러줬다.
 “인보에게 죄가 없다니요? 최이 집정이 심어놓은 간자였다면서.”
 나는 김승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최이의 간자가 어디 한둘이오?”
 “인보가 최이에게 이곳 실상을 낱낱이 보고하면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될 텐데?”
 “그야 인보 스님뿐이겠소? 지밀 승정도 요주의 인물이긴 마찬가지지요. 오히려 승정이 더 위험한 인물이지요. 사실 인보 스님 같은 이를 매수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오. 지밀 승정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더 어렵지요.”
 인보의 주검 앞에서 김승이 천연덕스레 웃었다.
 “결국 인보는 유도화 향기에 취해 스스로 저승길을 찾아갔다는 거로군요.”
 “그랬다고 보오.”
 “난 인보가 폭포 산막에서 밤을 지냈다고 봅니다. 가온의 어머니가 산다는 산막에서요.”
 “글쎄요. 필요하다면 다시 가보시오. 약초골 공방도요. 편지가 거기 내 쪽방에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던 게 편지였다. 그런데 김승이 먼저 그 편지 얘기를 꺼냈다. 감추고 꺼리는 것 없이 모든 걸 공개하겠다는 뜻 같았다. 나는 당장 그곳에 다시 가고 싶었다.
 “이 관은 당분간 이대로 두지요.”
 나는 인보의 관 뚜껑을 덮었다.
 동굴을 나온 나는 김승과 함께 말을 타고서 약초골로 향했다. 가까이서 보고 느끼는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팽나무 그늘 아래 모정에서는 노인들이 바둑을 뒀고 공터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공기놀이나 제기차기를 하고 있었다. 협착한 산골치고는 제법 넓은 논과 밭도 풀어져 있었다. 거기서 자라나는 나락과 감자, 콩, 수수는 튼실해보였다.
 삼거리 주막집, 도장바위가 있는 실상사 골짜기를 지나 연못에 다다랐다. 인보의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는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윽한 향기를 뿜어냈다. 향기보다 더 마음을 사로잡는 게 빛이었다. 약초골 산 빛깔, 하늘 빛깔, 연꽃 빛깔 위로 쏟아져내리는 찬란한 빛이었다.
 뛰어들고 싶었다. 나라도 당장 연못 속에 뛰어들고 싶었다. 새벽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가운데 저 빛이 뻗치기 시작하는 순간과 만났다면 더 그랬을 게다. 게다가 인보는 유도화 향기에 취해 있던 상태였다. 숨어 있던 본능을 흔들어 깨우는 치명적인 그 향기를 나도 체험했었다. 꽃잎과 닿는 손끝에서 눈이 열리고 천상의 음악 소리가 났다. 나체의 선녀들이 내려와 향기로 목욕하는 무릉도원이었다. 관 속에서 인보는 웃고 있었다. 웃으며 죽었다는 얘기다. 타살이거나 고통스럽게 죽었다면 절대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없다. 인보는 왜 이 연꽃 밭에서 숨을 멈춘 것인가. 어차피 이승에서 죽음은 흔해빠진 일이다. 전쟁 통에 죽음은 발아래 차여 뒹굴고 불안은 먹장구름처럼 세상을 뒤덮고 있다. 의미 없고 맹목적인 생을 무작정 연장하는 것만이 옳은 일일까. 맹물처럼 싱겁고 무료한 일상에서 극도의 쾌락과 절정의 아름다움을 만났다면 그 순간 삶을 정지시키고 싶지 않을까. 열락에 빠진 절정의 순간 문득 고통 없이 숨을 멈춘다면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홍련과 백련이 흐드러진 이 연꽃 밭이야말로 다비장이다. 그렇다. 저 연꽃들은 이글거리는 불꽃을 닮았다. 향기로운 불꽃 속에서 웃으며 생의 최후를 맞은 인보는 행복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름다운 자살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생명활동이란 정점에 다다른 이후부터는 시나브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던가.
 “이제 그만 가봅시다.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인보 스님은 썩 괜찮은 최후였다고 보오.”
 김승이 공방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당당한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참 쓸쓸해 보였다.
 둥그런 성채 모양으로 된 공방은 부산했다. 말에서 내린 김승은 공방들 틈에 낀 쪽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발걸음이었다. 일하고 있는 장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앞이 열린 작은 사물함들과 작은 침상이 놓인 쪽방은 반듯하고 정갈했다. 사물함에는 공예품 물목이나 설계도, 제작 주문서 따위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들창 밖으로는 둥그런 마당과 공방들이 보였다.
 “왜 그 귀한 편지를 이곳에 두었던 거요?”
 “본래는 내 숙소 서재에 보관해 왔었소. 며칠 전 지밀 승정이 곧 내려올 것을 생각하며 꺼내 보다가 여기까지 지니고 오게 됐고 저 속에 넣어뒀던 거요.”
 “여기다 편지를 둬서 인보 스님 눈에 띈 거 아니오?”
 “그 스님이 이 방에 올지 누가 알았겠소.”
 인보가 어떻게 이 쪽방에 들어왔고 그 편지를 찾아낸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그 편지를 손에 넣은 인보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자못 흥분했을 터였다. 최이에게 아니, 어쩌면 내게 전해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그의 죽음과 함께 묻혀버렸다.
 “그 편지 어딨소?”
 내가 묻자 김승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주었다. 무인집권기 고려 문인의 자존심이었던 백부 유승단의 묵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세필로 휘갈겨 쓴 간찰 말미에 백부의 수결(手決)이 또렷했다.
“그 편지 가지시오.”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것도!”
 그가 내민 건 상아로 된 호신불이었다. 백부께서 편지 서두에 쓴 것처럼 '저승에 갈 때 무덤에 넣어달라 할 참'이라 했던 바로 그 호신불이었다. 무덤 속에 있어야 할 작은 불상이 왜 여기 있는 걸까.

[와글와글 클릭]`훤앓이` 김수현 과거 복근·여장 사진 화제




[이데일리 김민화 리포터] MBC 수목 미니시리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에서 왕 이훤 역을 맡은 배우 김수현의 과거 사진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팬들은 과거 김수현의 교복 모델 사진은 물론 짐승남 포스의 복근 사진, 여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미모를 뽐내는 여장 사진까지 그의 옛 흔적들을 찾아냈다.
김수현은 2007년 MBC 시트콤으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무명기간을 거쳐 지난해 `드림하이`를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올해 시청률 40%에 육박하는 `해품달`로 연예계 가장 핫한 남자로 떠올랐다.